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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금상] 박남숙 - 내일을 위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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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2-08-2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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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박 남 숙 (금상 수상 作)
둥근 돔 안으로 들어선다. 땅 밑의 묵은 먼지가 일렁인다. 어둑한 땅속에 수십 기의 돌을 다듬어 만든 덧널들이 보인다. 입구를 등지고 비치는 햇살은 현생이고 어둠의 저편은 죽은 이의 마지막 안식처다.
고령 대가야 왕릉전시관에는 먼저 살다간 이가 남겨놓은 흔적들이 발굴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절대자는 현생의 삶을 내세에도 누리고자 많은 부장품들과 함께 잠들었다. 이름 없는 이들은 생이 단절된 채 거대한 무덤 속에 잠겼다. 그들은 무엇을 논하고 있었던가. 어떤 것을 전하고 싶었을까. 1500여 년 전, 죽은 이들이 말을 걸어온다. 너는 어찌 살고 있냐고.
책은 내 삶의 도구가 아니었다. 재미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일차원적 수준의 시간 때우기 방편이었다. 신문의 해독 불가능한 정치, 경제면을 제외하고 가십으로 메운 컬러판 연예, 사회면이 탐닉의 대상으로 자리했을 뿐.
엄마가 되고 태교를 목표로 육아서적들을 살폈다. 목적이 정해진 독서에 바람이 잔뜩 실렸다. 내 삶에 옹골지게 들어앉은 아이에게 모든 초점이 맞추어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작은 것보다 큰 것에 신경이 쓰였다. 다양한 유아전집도서를 장만하고 여러 개의 책꽂이가 벽면을 메워갔다. 아이가 제대로 읽는지 헤아리기보다 연령대에 맞는 책을 들여놓기에 바빴다. 욕심은 경제적 상황으로 주춤하는 위기를 맞았다.
출판영업원의 적극적인 권유에 마음이 흔들렸다. 어느덧 낯선 환경에서 좌충우돌하는 내가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의가 찾아왔다. 숫기 없는 성향에 어울리지 않는 하루하루가 어깨를 짓눌렀다. 판매를 위해 메고 다니던 책의 무게로 비로소 삶의 무게가 가늠되었다. 어설픈 욕심에 일상이 엉망으로 어그러지자 책에 대한 미련이 사라져버렸다. 호되게 신고식을 치른 젊은 날이었다.
학부모가 되면서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양손 가득 동화책을 빌려 읽힌 시간들이 늘어났다. 빌린 책들을 같이 읽다 감성에 젖어들기도 했다. 결과만 바라보는 어른들의 일그러진 시선으로 동심을 재단한 ‘황선미 작가의 나쁜 어린이표’를 읽었다. 언젠가 나도 엄마의 반성문이라는 책을 써볼까 설핏 마음추가 움직였다. 책은 굳은 감성에 잔잔한 파랑을 몰고 왔다.
도서관 출입이 거듭될수록 책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 학교도서관에서 사서도우미와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도 하게 되었다. 알음알음 책 소개를 부탁받기도 했다. 하지만 책은 내가 바라는 대로 학교성적과 긴밀히 연관되지는 않았다. 아들에 대한 해묵은 집착의 끈을 놔버렸다. 오히려 그래서일까. 문제집을 풀려고 도서관을 찾지 않고 책을 보고 도서관 강좌를 챙겨 듣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순순하게 책을 탐독하는 아들로 자랐다.
가슴 속에 고이는 잡념들이 일상을 지배할 무렵, 아이를 위한 강좌와 동화책에 머물던 관심을 나에게로 옮겼다. 무수히 떠오르는 사념들을 풀어놓을 요량에 수필 강좌를 듣게 되었다. 소소한 일상의 우물에서 수필이라는 두레박이 건져 올린 삶에 대한 성찰이 문밖에서 노크를 했다. 가벼운 미열에 몸을 일으켰다.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도서관 강좌 중에 ‘나를 찾는 책쓰기’라는 타이틀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독서의 페달도 제대로 밟지 못하던 내가 책쓰기 동아리에 가입했다. 두서없던 자기소개 시간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는 말 외에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제 속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떠오르는 상념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꿰는 방법을 배우면 무언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나를 찾는다는 밑도 끝도 없는 문구에 끌린 마음은 속내를 털어놓게 했다. “가다가다 보면 걷다 걷다 보면, 가고 싶은 곳에 가는 법이니~”
선생님은 부처님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했다. 글을 쓰겠다는 욕망이 바로 재능이다. 재능은 갖추었으니 거기에 노력만 합치면 능력자가 된다는 격려에 눈빛이 반짝였다.
살아오면서 부정적인 마음과 힘들었던 일, ‘나는 안 돼.’라는 생각들을 종이 위에 나열했다. 갈기갈기 찢은 조각들이 종이 관 안에 안치되어 땅속에 묻혔다. ‘나는 할 수 없다.’의 무덤이었다. 할 수 없는 것을 묻었으니 이제부터는 할 수 있다만 남았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어쭙잖은 글을 풀어놓던 날들이 해를 넘어갔다. 응어리진 마음을 들여다보고 서툴게 지어낸 글들을 발표하고 나면 가슴은 방망이질을 했다.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의 고동을 느낀 날들이 이어졌다. 다른 글을 소리 내어 읽을 땐 울리지 않던 심박동이 유독 내 글을 발표하는 순간 크게 파동을 쳤다. 어쩌면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느껴졌다.
뜻이 맞는 회원들이 모여 스터디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책을 읽고 감상평을 나누었다. 한 가닥의 생각이 여러 가닥으로 합쳐져 굵은 동아줄이 되었다. 써온 글들을 서로 첨삭해주며 모임은 탄탄해졌다. 중학교 책쓰기 동아리에 참여하여 아이들의 글을 매만졌다. 책 축제에 초대된 우리는 회원들이 출간한 책들을 전시했다. 활동모습을 담은 사진과 출간목록, 손으로 쓴 작품들이 파란 하늘에 걸린 만국기처럼 행사장을 물들였다.
노년기에 접어든 어르신들을 도와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맡게 되었다. 자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고심하는 백발의 노체가 지나온 생을 깊이 더듬었다. 남길 것과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모양이다. 삐뚤빼뚤 써내려간 손 글씨에 과거가 살아나 꿈틀거렸다. 자서전 속에 쏟아놓은 이야기는 당신의 삶을 떠나 우리가 거쳐야할 인생길로 다가왔다.
한 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단어 하나에, 문장 하나에, 삶의 희로애락이 문단속에 녹아있었다. 못다 한 사연들이 보태지고 숨기고픈 이야기들이 몸부림치며 아우성이다. 삶의 모난 부분이 항변의 의지를 내보였다. 음지에 갇혀있던 낮은 목소리가 마침내 문을 열고 나왔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따뜻하게 품을 수 있었던 과거의 모습에 응원의 눈물이 어렸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 살아온 모습에 따라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독자의 호불호를 상관하지 않고 오직 쓰는 이의 발자취에 따라 기억된다. 선조들이 남긴 서록들은 시간이 흘러 우리들 곁에 유산으로 남았다. 개인의 삶도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으리라.
책속에 길이 있다 했던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인정받는 사람에게 길이 있는가 물어보았다. 야릇한 웃음만 짓던 표정에 혼란스럽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책속의 길은 ‘왜’라는 질문을 품은 사람에게 보인다는 것을. 질문은 책과 책을 연결하는 열쇠다. 의문을 해소하려 다른 책을 집어 든다. 삶의 지혜는 읽기와 쓰기의 합일에서 이루어진다.
고대의 유택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즐비하다. 산마루를 장악한 묘지는 또 하나의 산이 되어 푸른 기운의 잔디를 입고 동그마니 서있다. 둥그스름한 무덤은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에서 비롯되었을까. 모난 세상에 살면서 하늘처럼 둥근 삶을 추구하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모습이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채워진다. 나는 지금, 인생이라는 책을 써나가고 있다.
박 남 숙 (금상 수상 作)
둥근 돔 안으로 들어선다. 땅 밑의 묵은 먼지가 일렁인다. 어둑한 땅속에 수십 기의 돌을 다듬어 만든 덧널들이 보인다. 입구를 등지고 비치는 햇살은 현생이고 어둠의 저편은 죽은 이의 마지막 안식처다.
고령 대가야 왕릉전시관에는 먼저 살다간 이가 남겨놓은 흔적들이 발굴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절대자는 현생의 삶을 내세에도 누리고자 많은 부장품들과 함께 잠들었다. 이름 없는 이들은 생이 단절된 채 거대한 무덤 속에 잠겼다. 그들은 무엇을 논하고 있었던가. 어떤 것을 전하고 싶었을까. 1500여 년 전, 죽은 이들이 말을 걸어온다. 너는 어찌 살고 있냐고.
책은 내 삶의 도구가 아니었다. 재미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일차원적 수준의 시간 때우기 방편이었다. 신문의 해독 불가능한 정치, 경제면을 제외하고 가십으로 메운 컬러판 연예, 사회면이 탐닉의 대상으로 자리했을 뿐.
엄마가 되고 태교를 목표로 육아서적들을 살폈다. 목적이 정해진 독서에 바람이 잔뜩 실렸다. 내 삶에 옹골지게 들어앉은 아이에게 모든 초점이 맞추어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작은 것보다 큰 것에 신경이 쓰였다. 다양한 유아전집도서를 장만하고 여러 개의 책꽂이가 벽면을 메워갔다. 아이가 제대로 읽는지 헤아리기보다 연령대에 맞는 책을 들여놓기에 바빴다. 욕심은 경제적 상황으로 주춤하는 위기를 맞았다.
출판영업원의 적극적인 권유에 마음이 흔들렸다. 어느덧 낯선 환경에서 좌충우돌하는 내가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의가 찾아왔다. 숫기 없는 성향에 어울리지 않는 하루하루가 어깨를 짓눌렀다. 판매를 위해 메고 다니던 책의 무게로 비로소 삶의 무게가 가늠되었다. 어설픈 욕심에 일상이 엉망으로 어그러지자 책에 대한 미련이 사라져버렸다. 호되게 신고식을 치른 젊은 날이었다.
학부모가 되면서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양손 가득 동화책을 빌려 읽힌 시간들이 늘어났다. 빌린 책들을 같이 읽다 감성에 젖어들기도 했다. 결과만 바라보는 어른들의 일그러진 시선으로 동심을 재단한 ‘황선미 작가의 나쁜 어린이표’를 읽었다. 언젠가 나도 엄마의 반성문이라는 책을 써볼까 설핏 마음추가 움직였다. 책은 굳은 감성에 잔잔한 파랑을 몰고 왔다.
도서관 출입이 거듭될수록 책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 학교도서관에서 사서도우미와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도 하게 되었다. 알음알음 책 소개를 부탁받기도 했다. 하지만 책은 내가 바라는 대로 학교성적과 긴밀히 연관되지는 않았다. 아들에 대한 해묵은 집착의 끈을 놔버렸다. 오히려 그래서일까. 문제집을 풀려고 도서관을 찾지 않고 책을 보고 도서관 강좌를 챙겨 듣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순순하게 책을 탐독하는 아들로 자랐다.
가슴 속에 고이는 잡념들이 일상을 지배할 무렵, 아이를 위한 강좌와 동화책에 머물던 관심을 나에게로 옮겼다. 무수히 떠오르는 사념들을 풀어놓을 요량에 수필 강좌를 듣게 되었다. 소소한 일상의 우물에서 수필이라는 두레박이 건져 올린 삶에 대한 성찰이 문밖에서 노크를 했다. 가벼운 미열에 몸을 일으켰다.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도서관 강좌 중에 ‘나를 찾는 책쓰기’라는 타이틀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독서의 페달도 제대로 밟지 못하던 내가 책쓰기 동아리에 가입했다. 두서없던 자기소개 시간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는 말 외에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제 속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떠오르는 상념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꿰는 방법을 배우면 무언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나를 찾는다는 밑도 끝도 없는 문구에 끌린 마음은 속내를 털어놓게 했다. “가다가다 보면 걷다 걷다 보면, 가고 싶은 곳에 가는 법이니~”
선생님은 부처님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했다. 글을 쓰겠다는 욕망이 바로 재능이다. 재능은 갖추었으니 거기에 노력만 합치면 능력자가 된다는 격려에 눈빛이 반짝였다.
살아오면서 부정적인 마음과 힘들었던 일, ‘나는 안 돼.’라는 생각들을 종이 위에 나열했다. 갈기갈기 찢은 조각들이 종이 관 안에 안치되어 땅속에 묻혔다. ‘나는 할 수 없다.’의 무덤이었다. 할 수 없는 것을 묻었으니 이제부터는 할 수 있다만 남았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어쭙잖은 글을 풀어놓던 날들이 해를 넘어갔다. 응어리진 마음을 들여다보고 서툴게 지어낸 글들을 발표하고 나면 가슴은 방망이질을 했다.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의 고동을 느낀 날들이 이어졌다. 다른 글을 소리 내어 읽을 땐 울리지 않던 심박동이 유독 내 글을 발표하는 순간 크게 파동을 쳤다. 어쩌면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느껴졌다.
뜻이 맞는 회원들이 모여 스터디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책을 읽고 감상평을 나누었다. 한 가닥의 생각이 여러 가닥으로 합쳐져 굵은 동아줄이 되었다. 써온 글들을 서로 첨삭해주며 모임은 탄탄해졌다. 중학교 책쓰기 동아리에 참여하여 아이들의 글을 매만졌다. 책 축제에 초대된 우리는 회원들이 출간한 책들을 전시했다. 활동모습을 담은 사진과 출간목록, 손으로 쓴 작품들이 파란 하늘에 걸린 만국기처럼 행사장을 물들였다.
노년기에 접어든 어르신들을 도와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맡게 되었다. 자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고심하는 백발의 노체가 지나온 생을 깊이 더듬었다. 남길 것과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모양이다. 삐뚤빼뚤 써내려간 손 글씨에 과거가 살아나 꿈틀거렸다. 자서전 속에 쏟아놓은 이야기는 당신의 삶을 떠나 우리가 거쳐야할 인생길로 다가왔다.
한 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단어 하나에, 문장 하나에, 삶의 희로애락이 문단속에 녹아있었다. 못다 한 사연들이 보태지고 숨기고픈 이야기들이 몸부림치며 아우성이다. 삶의 모난 부분이 항변의 의지를 내보였다. 음지에 갇혀있던 낮은 목소리가 마침내 문을 열고 나왔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따뜻하게 품을 수 있었던 과거의 모습에 응원의 눈물이 어렸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 살아온 모습에 따라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독자의 호불호를 상관하지 않고 오직 쓰는 이의 발자취에 따라 기억된다. 선조들이 남긴 서록들은 시간이 흘러 우리들 곁에 유산으로 남았다. 개인의 삶도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으리라.
책속에 길이 있다 했던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인정받는 사람에게 길이 있는가 물어보았다. 야릇한 웃음만 짓던 표정에 혼란스럽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책속의 길은 ‘왜’라는 질문을 품은 사람에게 보인다는 것을. 질문은 책과 책을 연결하는 열쇠다. 의문을 해소하려 다른 책을 집어 든다. 삶의 지혜는 읽기와 쓰기의 합일에서 이루어진다.
고대의 유택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즐비하다. 산마루를 장악한 묘지는 또 하나의 산이 되어 푸른 기운의 잔디를 입고 동그마니 서있다. 둥그스름한 무덤은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에서 비롯되었을까. 모난 세상에 살면서 하늘처럼 둥근 삶을 추구하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모습이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채워진다. 나는 지금, 인생이라는 책을 써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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