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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동상] 오승 - 정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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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2-08-2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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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오 승
정서연 부산 동래구 쇠미로 (온천동)
가을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럽던 그날도 밤기차를 타고 대구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기차가 대구역을 지나고 있었다. 동대구역에서 오 분만 더 가면 대구역인데 그만 잠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어쩌지? 어디서 어떻게 대구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갖 생각이 지나갔다. 스스로 자책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대구로 이사를 했다. 부산의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던 나는 기차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구포역에 도착하면 밤 10시 30분이었다. 지친 몸으로 밤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만치에 역무원이 걸어오고 있었다. 뭐라고 물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아! 이 열차는 다음 역인 왜관에 서지 않아요. 그러니 김천까지 가셔서 대구역으로 오는 기차를 타면 됩니다. 김천에서 대구역으로 오는 열차는 새벽 3시 30분에 있습니다. 새벽에는 열차 시간 간격이 길어요.”
친절한 역무원은 승차권을 달라고 하더니 빨간 펜으로 오승(誤乘)이라고 쓰고 도장을 찍어 주었다. 김천에서 대구행 기차는 그냥 타면 된다고 했다. 승차권 검사 시에는 오승이 쓰여 있는 표를 보여주면 되고 새벽 열차에는 자리가 많으니 편한 곳에 앉으면 된단다.
오승도장이 찍힌 승차권을 들고 낯선 김천역에 내렸다. 쓸쓸한 새벽 대합실에는 각기 다른 표정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이 새벽에 저 사람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나처럼 열차를 잘못 탄 것일까. 모두 피곤하고 지친 얼굴이다. 그들을 쳐다보다가 문득 곽재구의 사평 역에서라는 시가 생각났다.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쓸쓸한 간이역의 대합실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바로 내 마음 같았다. 고단한 나의 눈은 모든 사람의 얼굴이 피곤에 지친 것으로 보였다. 담배 연기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때에 전 작업복 차림의 사람, 잔뜩 웅크린 채 코를 고는 체육복 차림의 청년, 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돌아앉은 중년부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오승으로 이곳까지 와 있는 나의 모습은 또 어떤가.
그때 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흐릿한 조명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흰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나 있는 중년 여인이었다.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저런 생각을 하며 대합실을 서성거리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한 생각이 번쩍했다. 책이 내 가방 안에도 있다. 오승으로 나에게 책 읽을 시간이 두어 시간 더 주어진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저 사람도 이 새벽에 책을 읽고 있지 않는가. 생각은 행동과 습관을 습관은 인격과 운명을 결정한다는 책속의 글귀가 생각났다.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책을 꺼내 들었다.
힘들 때마다 내 인생의 지침서 역할을 해 주는 차동엽 신부님의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무지개 원리’라는 책이다. 이 책은 나에게 절대긍정, 절대희망을 가지고 하루에 삼천 번씩 감사하며 살라고 한다.
나는 하루에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있을까.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며 긍정적 사고와 감사만이 행복의 길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며 감사합니다를 자꾸 되뇌었다.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부정적 생각과 불평을 하지말자. 감사하며 살아보자. 열차 한 번 잘못 타고 왔다고 무슨 문제가 될까. 오히려 내가 잠들었던 오 분을 고맙게 생각하자. 내가 언제 김천역에 또 올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대합실 밖으로 나가 보았다. 생각을 바꾸니 찬바람까지 내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주는 느낌이었다. 달빛 아래 붉은 단풍잎들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것 같았다. 천천히 대합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까와는 다르게 보였다.
가끔씩 기차여행을 할 때면 몇 권의 책을 꼭 챙긴다. 오승으로 김천에서 보냈던 그 시간은 내가 책을 더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낯선 변화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잠깐의 독서는 내가 부정에서 긍정의 사고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10년이 지났다. 지금 나는 책을 사랑하는 동아리 모임인 책넝쿨 회장이다. 책을 선정하여 읽고 한 달에 한 번씩 작은 도서관에 모여 깊이 있게 토론을 한다. 나는 길게 뻗어 퍼져나가는 넝쿨처럼 책넝쿨로 변화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오승은 내 인생의 쉼표였다.
정서연 부산 동래구 쇠미로 (온천동)
가을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럽던 그날도 밤기차를 타고 대구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기차가 대구역을 지나고 있었다. 동대구역에서 오 분만 더 가면 대구역인데 그만 잠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어쩌지? 어디서 어떻게 대구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갖 생각이 지나갔다. 스스로 자책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대구로 이사를 했다. 부산의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던 나는 기차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구포역에 도착하면 밤 10시 30분이었다. 지친 몸으로 밤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만치에 역무원이 걸어오고 있었다. 뭐라고 물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아! 이 열차는 다음 역인 왜관에 서지 않아요. 그러니 김천까지 가셔서 대구역으로 오는 기차를 타면 됩니다. 김천에서 대구역으로 오는 열차는 새벽 3시 30분에 있습니다. 새벽에는 열차 시간 간격이 길어요.”
친절한 역무원은 승차권을 달라고 하더니 빨간 펜으로 오승(誤乘)이라고 쓰고 도장을 찍어 주었다. 김천에서 대구행 기차는 그냥 타면 된다고 했다. 승차권 검사 시에는 오승이 쓰여 있는 표를 보여주면 되고 새벽 열차에는 자리가 많으니 편한 곳에 앉으면 된단다.
오승도장이 찍힌 승차권을 들고 낯선 김천역에 내렸다. 쓸쓸한 새벽 대합실에는 각기 다른 표정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이 새벽에 저 사람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나처럼 열차를 잘못 탄 것일까. 모두 피곤하고 지친 얼굴이다. 그들을 쳐다보다가 문득 곽재구의 사평 역에서라는 시가 생각났다.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쓸쓸한 간이역의 대합실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바로 내 마음 같았다. 고단한 나의 눈은 모든 사람의 얼굴이 피곤에 지친 것으로 보였다. 담배 연기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때에 전 작업복 차림의 사람, 잔뜩 웅크린 채 코를 고는 체육복 차림의 청년, 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돌아앉은 중년부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오승으로 이곳까지 와 있는 나의 모습은 또 어떤가.
그때 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흐릿한 조명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흰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나 있는 중년 여인이었다.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저런 생각을 하며 대합실을 서성거리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한 생각이 번쩍했다. 책이 내 가방 안에도 있다. 오승으로 나에게 책 읽을 시간이 두어 시간 더 주어진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저 사람도 이 새벽에 책을 읽고 있지 않는가. 생각은 행동과 습관을 습관은 인격과 운명을 결정한다는 책속의 글귀가 생각났다.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책을 꺼내 들었다.
힘들 때마다 내 인생의 지침서 역할을 해 주는 차동엽 신부님의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무지개 원리’라는 책이다. 이 책은 나에게 절대긍정, 절대희망을 가지고 하루에 삼천 번씩 감사하며 살라고 한다.
나는 하루에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있을까.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며 긍정적 사고와 감사만이 행복의 길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며 감사합니다를 자꾸 되뇌었다.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부정적 생각과 불평을 하지말자. 감사하며 살아보자. 열차 한 번 잘못 타고 왔다고 무슨 문제가 될까. 오히려 내가 잠들었던 오 분을 고맙게 생각하자. 내가 언제 김천역에 또 올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대합실 밖으로 나가 보았다. 생각을 바꾸니 찬바람까지 내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주는 느낌이었다. 달빛 아래 붉은 단풍잎들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것 같았다. 천천히 대합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까와는 다르게 보였다.
가끔씩 기차여행을 할 때면 몇 권의 책을 꼭 챙긴다. 오승으로 김천에서 보냈던 그 시간은 내가 책을 더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낯선 변화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잠깐의 독서는 내가 부정에서 긍정의 사고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10년이 지났다. 지금 나는 책을 사랑하는 동아리 모임인 책넝쿨 회장이다. 책을 선정하여 읽고 한 달에 한 번씩 작은 도서관에 모여 깊이 있게 토론을 한다. 나는 길게 뻗어 퍼져나가는 넝쿨처럼 책넝쿨로 변화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오승은 내 인생의 쉼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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