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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은상] 소정혜 -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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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2-08-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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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은 당신을 위해 울린다
소 정 혜 (은상 수상 作)
“내가 말했지?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난 없는 거라고.”
요즘 다시 빠지기 시작한 드라마 여주인공이 흔들리는 남편에게 애절하게 뱉는 대사이다. 지금 내가 우리 아파트 도서관에게 꼭 하고픈 말이다.
‘책마루도서관, 네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는 거라고.’
8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월성동 아파트로 이사 와서, 우연히 도서관 봉사자 모집공고를 보았다. 뭔가에 이끌리 듯 도서관을 찾아갔다. 마흔 살 가까이 살면서‘여기 저 있어요. 그 일은 바로 제가 찾던, 하고 싶은 일이예요’라며 내 발로 찾아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라면 요 정도는 해야지 하면서 학교 책읽어주기 모임과 녹색어머니회가 가정을 벗어난 나의 작은 활동의 전부였다. 그냥 동네에서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남 보이기에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엄마, 아내라는 타이틀을 가진 남부럽지 않은 여자. 그게 내가 그려왔던 나의 이미지였다. 거기에 충실히 살아왔고, 또한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헌신적으로 날 키워내신 부모님과 내가 하는 일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남편 덕분에, 아들 딸 두고, 내가 생각했던 그림에 가깝게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던 나에게, 도서관 봉사자라는 색다른 역할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개관 전 모임에서 관장을 맡아할 사람을 뽑자는 말에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럼 제가 할게요’라고 손을 든 책마루도서관 초대관장님을 보았다. ‘아니, 완전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는 아파트도서관 관장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니. 어떻게 저렇게도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거지? 그럼 나는 내가 하는 일에 한 번이라도 확신을 가져 본 적이 있었던가?’
그 날 초대관장님의 자신에 찬 얼굴은 내 가슴 속 깊이 각인되어, 그 후 무슨 일이든 주저함과 나태함으로 무장한 내가 덥석 새로운 일에 뛰어들도록 뒤에서 내 등을 살며시 밀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다.
봉사자가 10명 남짓 모였을 때, 관장님의 성화에 못 이겨, 가까운 달서구 독서대학까지 수강 신청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달서구청 대강당에 자리를 앉았다.
대구대 도서관과 윤희윤 교수님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이 대단합니다. 뭐든 배우려고 이 오전 시간에 여기서 강의를 듣는다는 건 칭찬받을 만합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나라 도서관의 실태와 도서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평생을 연구하고 활동하시는 모습에 감동했다. 그림책, 독서코칭, 독서심리, 디자인과 교수님 등 내가 평소에 접할 수 없었던 장르의 전문가님들의 수업을 들으며, 문득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졌다.
‘저 분들은 왜 네 앞에 서 있고, 넌 왜 의자에 앉아 있는 거니?’
‘저 분들이 모두 자신의 분야에 우뚝 서서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는데, 그럼 네가 여태껏 이룬 게 있으면 말해봐’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구 떠올랐다.
맞아! 난 20년 전에도 요 모습 그대로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예전 내 앞의 강단에서 우리 과 교수님들도 이렇게 강의를 하셨다. 그 때 매시간 이어지는 강의들을 왜 그리 철없이 가벼이 여겼던가! 그 분들이 내뿜는 지식의 향연이 늘 나의 것이 아니라고 한탄만 했었다. 나는 이 세상을 잘 모르는데, 야속하게도 주위의 모든 것들이 날 비웃는 듯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였구나! 나의 가족, 친구들, 교수님 모두가 날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데, 나는 내 안에 갇혀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생각에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후회의 눈물을 흘렸고, 동시에 뒤늦게라고 깨달은 내 자신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늘 쉬운 길, 가 봤던 길, 실수 하지 않을 길, 남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을 길만을 찾아 다녔었구나. 지금부터는 힘들어 보이는 길, 안 가봤던 길, 실수할 수도 있는 길, 남에게 싫은 소리 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길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독서대학 심화과정인 논술 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함께 두 달 동안 공부하며 만났던 분들 15명이 모여 독서동아리도 시작했다. 마침 내가 사는 아파트가 대구 최초 평생학습마을로 지정되어, 홍보분과장이라는 직함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평생 만날 것 같지 않았던 관련 공무원들과 만나 마을사업을 의논하고, 리더양성프로그램에 빠짐없이 참여하여, 매 강의 때마다 나 자신의 틀이 조금이 깨어지는 걸 느끼며, 주저함 없이 나 자신을 던졌다.
그 때부터 달서구청 사이트와 거리의 현수막, 각 종 공고문과 안내책자 등 눈에 보이는 대로 꼼꼼히 살펴보고, 시간만 되면 무조건 수강신청을 했다. 특히 역사, 미술, 음악, 문학, 철학 등 다양한 인문학 강의를 듣기 위해 저녁 시간, 또각 또각 달서구청으로 향하는 내 구두 소리가 그렇게 경쾌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매일 매일 나에게 일어날 일과 마주칠 사람들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었고, 또한 배움의 즐거움이 주는 선물에 설레는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세상에 리더들은 원래 타고 태어나는 거라 믿었던 내가, 아파트도서관 관장 직에 올랐다. 정말 후회 없이 도서관을 위해 아니, 나 자신을 위해 머리 위 안테나를 온통 도서관에 맞춰 놓고, 나의 노력과 능력의 보상인 달콤한 열매를 맛보는 귀한 2년을 보냈다. 구립도서관 홈페이지에 용기를 내어 남겼던 독서후기가 작은 책자로 나오는 소소한 즐거움과 느꼈고, 독서릴레이 행사에 토론자로 참여하여 뜻 깊은 시간도 보냈다. 또 달서구작은도서관 아이들과 함께 독서릴레이와 독서 골든벨 대회 사회자로 진행도 맡는 영광을 누렸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 지문이라도 읽는 시간이 되면, 국어 선생님께서 시킬까봐 얼굴도 못 들고 벌벌 떨었던 나였다. 앞에 서는 게 너무나도 두려워 기회가 와도 늘 도망가면서, 나서지 않는 게 겸손과 미덕인양 자기합리화 시키면서 살아온 나다.
지금 내 생활은 도서관에서 찾은 기적이다.
달서구 인문학아카데미 심화과정에서 계명대 국문과 교수님이 이런 글귀를 보여주셨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1572~1631)
그 누구도 스스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일부분,
전체의 부분이다.
만일 흙 한 덩이가 바다에 씻겨 나가면,
유럽 대륙이 그만큼 작아질 것이고,
바다의 갑(岬)도 그럴 것이고,
당신의 친구나 당신 자신의 영지(領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누구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개입되어 있으니까.
그러니 누군가를 보내 알려하지 마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냐고.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린다.
영화 제목으로 로맨틱한 고전으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교수님은 목청 높여 외치셨다. 왜 달나라에 가려고 그 많은 경비를 쓰는가? 차라리 우리 지구의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원조해야한다. 왜 가까이 있는 내 주위를 돌보지 않고, 먼 곳만 바라보느냐,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은 불과 60년 전의 우리 나라 아이들이였다. 세상 모든 일이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게 없다며, 내 주위를 꼭 살펴 관심과 도움을 줘야한다고 하셨다.
아아-----. 지금 이 수업이, 이 교수님이 나에게 소리쳐 일깨워 주고 있었다. 남을 위하여 종이 울리는 게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 종을 울리고 있었다. 나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게 있다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소중한 거라고. 모든 것에서 배울 수 있다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 라고. 그리고 주위를 늘 돌아다보라고.
내 귀에 쨍그랑 쨍그랑 울리는 종소리가 이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그 후 가끔씩은 예전 소심함이 불쑥 불쑥 얼굴을 내밀어 뒷걸음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나의 편협한 생각의 조각들을 훌훌 날려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또 하나의 결실을 보았다. 6년 전, 독서대학에서 부러워했던 ‘서서 하는’ 강의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주위 분들의 권유에 용기를 얻어, 밤새워 남편한테 파워포인트를 배워서, 10회 차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수업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배우고 읽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과 내가 좋아했던 분야에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매 시간 강의를 진행했다. 올해 여름은 내 생애 가장 빛나는 해였다.
얼마 전, 어느 강좌를 듣던 중, 나 자신을 정의해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곧 뭔가 될 것 같은 사람,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지금의 나를 돌이켜보았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 그림책 세트와 어린이 잡지책을 부지런히 사다 주신 엄마, 고등학교 2학년 때 고전 책 제목을 술술 말하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천 원짜리 마당문고를 읽게 만들어준 앞자리 친구,
8년 전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한 나에게 공지영 작가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을 선물로 주었던 딸 친구 엄마,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일하는 게 결국 나를 이롭게 하는 일이란 걸 몸소 보여줬던 책마루도서관 초대관장님, 나의 게으름을 사랑의 채찍질로 함께 해 준 독서동아리 회원님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강의들이 나를 세우고 다듬고 매일 매일 새로 태어나도록 만들어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곳이 바로 책마루도서관이었다.
지난 해, 도서관 개관 5주년 기념식 겸, 관장 이취임식에서, 함께 모인 봉사자와 찾아오신 내빈께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관장직을 맡아왔던 지난 2년 동안 제일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즐거웠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책마루도서관에 많은 빚을 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또 서게 될지 기대해주세요. 제가 받은 사랑만큼 우리 도서관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더욱 더 고민하고, 봉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이토록 확신의 찬 말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었던 것 또한기적이었다. 난 오늘도 나의 작은 소망들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내 앞에 펼쳐진 환한 빛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소 정 혜 (은상 수상 作)
“내가 말했지?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난 없는 거라고.”
요즘 다시 빠지기 시작한 드라마 여주인공이 흔들리는 남편에게 애절하게 뱉는 대사이다. 지금 내가 우리 아파트 도서관에게 꼭 하고픈 말이다.
‘책마루도서관, 네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는 거라고.’
8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월성동 아파트로 이사 와서, 우연히 도서관 봉사자 모집공고를 보았다. 뭔가에 이끌리 듯 도서관을 찾아갔다. 마흔 살 가까이 살면서‘여기 저 있어요. 그 일은 바로 제가 찾던, 하고 싶은 일이예요’라며 내 발로 찾아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라면 요 정도는 해야지 하면서 학교 책읽어주기 모임과 녹색어머니회가 가정을 벗어난 나의 작은 활동의 전부였다. 그냥 동네에서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남 보이기에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엄마, 아내라는 타이틀을 가진 남부럽지 않은 여자. 그게 내가 그려왔던 나의 이미지였다. 거기에 충실히 살아왔고, 또한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헌신적으로 날 키워내신 부모님과 내가 하는 일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남편 덕분에, 아들 딸 두고, 내가 생각했던 그림에 가깝게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던 나에게, 도서관 봉사자라는 색다른 역할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개관 전 모임에서 관장을 맡아할 사람을 뽑자는 말에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럼 제가 할게요’라고 손을 든 책마루도서관 초대관장님을 보았다. ‘아니, 완전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는 아파트도서관 관장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니. 어떻게 저렇게도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거지? 그럼 나는 내가 하는 일에 한 번이라도 확신을 가져 본 적이 있었던가?’
그 날 초대관장님의 자신에 찬 얼굴은 내 가슴 속 깊이 각인되어, 그 후 무슨 일이든 주저함과 나태함으로 무장한 내가 덥석 새로운 일에 뛰어들도록 뒤에서 내 등을 살며시 밀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다.
봉사자가 10명 남짓 모였을 때, 관장님의 성화에 못 이겨, 가까운 달서구 독서대학까지 수강 신청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달서구청 대강당에 자리를 앉았다.
대구대 도서관과 윤희윤 교수님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이 대단합니다. 뭐든 배우려고 이 오전 시간에 여기서 강의를 듣는다는 건 칭찬받을 만합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나라 도서관의 실태와 도서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평생을 연구하고 활동하시는 모습에 감동했다. 그림책, 독서코칭, 독서심리, 디자인과 교수님 등 내가 평소에 접할 수 없었던 장르의 전문가님들의 수업을 들으며, 문득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졌다.
‘저 분들은 왜 네 앞에 서 있고, 넌 왜 의자에 앉아 있는 거니?’
‘저 분들이 모두 자신의 분야에 우뚝 서서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는데, 그럼 네가 여태껏 이룬 게 있으면 말해봐’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구 떠올랐다.
맞아! 난 20년 전에도 요 모습 그대로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예전 내 앞의 강단에서 우리 과 교수님들도 이렇게 강의를 하셨다. 그 때 매시간 이어지는 강의들을 왜 그리 철없이 가벼이 여겼던가! 그 분들이 내뿜는 지식의 향연이 늘 나의 것이 아니라고 한탄만 했었다. 나는 이 세상을 잘 모르는데, 야속하게도 주위의 모든 것들이 날 비웃는 듯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였구나! 나의 가족, 친구들, 교수님 모두가 날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데, 나는 내 안에 갇혀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생각에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후회의 눈물을 흘렸고, 동시에 뒤늦게라고 깨달은 내 자신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늘 쉬운 길, 가 봤던 길, 실수 하지 않을 길, 남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을 길만을 찾아 다녔었구나. 지금부터는 힘들어 보이는 길, 안 가봤던 길, 실수할 수도 있는 길, 남에게 싫은 소리 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길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독서대학 심화과정인 논술 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함께 두 달 동안 공부하며 만났던 분들 15명이 모여 독서동아리도 시작했다. 마침 내가 사는 아파트가 대구 최초 평생학습마을로 지정되어, 홍보분과장이라는 직함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평생 만날 것 같지 않았던 관련 공무원들과 만나 마을사업을 의논하고, 리더양성프로그램에 빠짐없이 참여하여, 매 강의 때마다 나 자신의 틀이 조금이 깨어지는 걸 느끼며, 주저함 없이 나 자신을 던졌다.
그 때부터 달서구청 사이트와 거리의 현수막, 각 종 공고문과 안내책자 등 눈에 보이는 대로 꼼꼼히 살펴보고, 시간만 되면 무조건 수강신청을 했다. 특히 역사, 미술, 음악, 문학, 철학 등 다양한 인문학 강의를 듣기 위해 저녁 시간, 또각 또각 달서구청으로 향하는 내 구두 소리가 그렇게 경쾌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매일 매일 나에게 일어날 일과 마주칠 사람들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었고, 또한 배움의 즐거움이 주는 선물에 설레는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세상에 리더들은 원래 타고 태어나는 거라 믿었던 내가, 아파트도서관 관장 직에 올랐다. 정말 후회 없이 도서관을 위해 아니, 나 자신을 위해 머리 위 안테나를 온통 도서관에 맞춰 놓고, 나의 노력과 능력의 보상인 달콤한 열매를 맛보는 귀한 2년을 보냈다. 구립도서관 홈페이지에 용기를 내어 남겼던 독서후기가 작은 책자로 나오는 소소한 즐거움과 느꼈고, 독서릴레이 행사에 토론자로 참여하여 뜻 깊은 시간도 보냈다. 또 달서구작은도서관 아이들과 함께 독서릴레이와 독서 골든벨 대회 사회자로 진행도 맡는 영광을 누렸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 지문이라도 읽는 시간이 되면, 국어 선생님께서 시킬까봐 얼굴도 못 들고 벌벌 떨었던 나였다. 앞에 서는 게 너무나도 두려워 기회가 와도 늘 도망가면서, 나서지 않는 게 겸손과 미덕인양 자기합리화 시키면서 살아온 나다.
지금 내 생활은 도서관에서 찾은 기적이다.
달서구 인문학아카데미 심화과정에서 계명대 국문과 교수님이 이런 글귀를 보여주셨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1572~1631)
그 누구도 스스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일부분,
전체의 부분이다.
만일 흙 한 덩이가 바다에 씻겨 나가면,
유럽 대륙이 그만큼 작아질 것이고,
바다의 갑(岬)도 그럴 것이고,
당신의 친구나 당신 자신의 영지(領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누구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개입되어 있으니까.
그러니 누군가를 보내 알려하지 마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냐고.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린다.
영화 제목으로 로맨틱한 고전으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교수님은 목청 높여 외치셨다. 왜 달나라에 가려고 그 많은 경비를 쓰는가? 차라리 우리 지구의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원조해야한다. 왜 가까이 있는 내 주위를 돌보지 않고, 먼 곳만 바라보느냐,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은 불과 60년 전의 우리 나라 아이들이였다. 세상 모든 일이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게 없다며, 내 주위를 꼭 살펴 관심과 도움을 줘야한다고 하셨다.
아아-----. 지금 이 수업이, 이 교수님이 나에게 소리쳐 일깨워 주고 있었다. 남을 위하여 종이 울리는 게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 종을 울리고 있었다. 나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게 있다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소중한 거라고. 모든 것에서 배울 수 있다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 라고. 그리고 주위를 늘 돌아다보라고.
내 귀에 쨍그랑 쨍그랑 울리는 종소리가 이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그 후 가끔씩은 예전 소심함이 불쑥 불쑥 얼굴을 내밀어 뒷걸음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나의 편협한 생각의 조각들을 훌훌 날려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또 하나의 결실을 보았다. 6년 전, 독서대학에서 부러워했던 ‘서서 하는’ 강의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주위 분들의 권유에 용기를 얻어, 밤새워 남편한테 파워포인트를 배워서, 10회 차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수업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배우고 읽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과 내가 좋아했던 분야에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매 시간 강의를 진행했다. 올해 여름은 내 생애 가장 빛나는 해였다.
얼마 전, 어느 강좌를 듣던 중, 나 자신을 정의해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곧 뭔가 될 것 같은 사람,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지금의 나를 돌이켜보았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 그림책 세트와 어린이 잡지책을 부지런히 사다 주신 엄마, 고등학교 2학년 때 고전 책 제목을 술술 말하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천 원짜리 마당문고를 읽게 만들어준 앞자리 친구,
8년 전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한 나에게 공지영 작가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을 선물로 주었던 딸 친구 엄마,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일하는 게 결국 나를 이롭게 하는 일이란 걸 몸소 보여줬던 책마루도서관 초대관장님, 나의 게으름을 사랑의 채찍질로 함께 해 준 독서동아리 회원님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강의들이 나를 세우고 다듬고 매일 매일 새로 태어나도록 만들어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곳이 바로 책마루도서관이었다.
지난 해, 도서관 개관 5주년 기념식 겸, 관장 이취임식에서, 함께 모인 봉사자와 찾아오신 내빈께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관장직을 맡아왔던 지난 2년 동안 제일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즐거웠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책마루도서관에 많은 빚을 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또 서게 될지 기대해주세요. 제가 받은 사랑만큼 우리 도서관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더욱 더 고민하고, 봉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이토록 확신의 찬 말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었던 것 또한기적이었다. 난 오늘도 나의 작은 소망들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내 앞에 펼쳐진 환한 빛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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