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촬영 명소 대구 .3] 이국적이고 고풍스러운 풍경…제작자들의 1순위 촬영지 ‘동산’
100여년 전 시간이 멈춘 듯…살아있는 ‘근대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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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니스 주택은 드라마 ‘각시탈’에서 소학교 교사 시절 착하고 순수했던 기무라 슌지의 집으로 등장했다. 강토와 우정을 나누며 검도 시합을 하며 뒹굴던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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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에서 기무라 준페이의 상하이 집(②)으로 등장한 곳이 바로 챔니스 주택(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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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유형문화재 제47호인 계성학교 핸더슨관(③). 드라마 ‘더 킹 투 하츠’에서 이재하가 다닌 왕립학교(④)로 나왔다. |
근대 초기, 우리 역사의 한 면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있었다. 19세기 말 대구의 개척 선교사들은 중구 동산과 그 주변(현 계성고 일대)을 선교기지로 삼고 병원과 사택, 교회, 학교 등을 지었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동산은 한국 개신교 초기 선교사들의 흔적이 한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다. 영화 ‘모던보이’의 정지우 감독은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근대공간이 너무 없다”고 했다. 그런 그가 선택한 곳이 바로 ‘동산’이다. 많은 영상 제작자들이 동산을 찾는다. 역사적 구체성뿐만 아니라 특별한 아름다움 때문에. 그때마다 동산은 또 다른 무엇이 된다.
◆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
동산은 청라언덕이라 불린다. 언덕에는 현재 의료선교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3채의 선교사 주택이 있다. 1908년의 블레어 주택, 1910년의 스윗츠 주택, 1911년의 챔니스 주택이 그것이다. 언덕에 펼쳐진 아름다운 서양식 정원과 챔니스 주택은 영화 ‘모던보이’,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과 ‘각시탈’ 등에 등장했다.
◇영화 ‘모던보이’ 이해명의 집(2008)
경쾌한 재즈가 흐르는 뽀얀 아침 햇살 속에서, 해명(박해일)은 커피를 끓인다. 지포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고 구두를 고르고 지폐로 가득 찬 지갑을 챙긴다. 그리고 거울 앞에서 페도라를 쓴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말한다.
“역시.”
영화 ‘모던보이’의 첫 장면이다.
일제시대, 식민지라는 공간과 근대라는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존재한다. 그들의 키워드는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커피, 클럽과 다방, 그리고 낭만과 멋이다. 그 세계는 무국적적이고 몽환적이다.
정지우 감독은 “공간이 넷째나 다섯째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고 한다. 해명은 모던보이다. 그의 아버지는 친일파고, 그는 조선 총독부에서 일한다. 해명의 집으로 등장한 챔니스 주택은 그의 부유한 삶과 자유분방한 성격을 나타내는 서양식 가구와 고급스러운 소품들, 그리고 화려한 색채로 가득하다. 해명은 오직 화려한 나날을 즐길 뿐, 그에게 역사적 현재성은 없었다. 어느 날, 해명은 클럽에서 운명의 여인 조난실(김혜수)을 만난다. 난실로 인해 해명의 삶과 의식과 공간은 완전히 변한다.
영화의 마지막, 모던보이 해명은 독립군이 되어 눈 내린 산속에 서있다. 그는 부옇고 몽환적인 빛으로 가득 찬 그의 집에서 난실과 함께한 행복했던 한 순간을 떠올린다.
“혹시라도 말이야, 만약에, 조선이 해방되는 날이 오면 그때 꼭 우리 조난실 이름으로 앨범 하나 내자. 조선말로. 어때?” “그럼, 자기두 조선의 독립을 원해?” “응, 응.”
◇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 기무라 준페이의 집(2010)
우당 이회영. 백사 이항복의 10세손으로, 조선 최고 명문세가의 후손이었다. 일제 강점기, 선생의 여섯 형제는 전 재산을 처분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 운동을 펼쳤다. 사상가이자 혁명가요, 투사이자 열사였던 우당. ‘자유인 이회영’(정동환)은 그의 일대기를 담은 드라마다. 대구 수성구 상동이 고향인 신창석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제국신문의 상하이 종군기자인 기무라 준페이(안재모)의 시선을 통해 이회영의 삶을 담담히 그린다. 준페이는 기자이기 이전에 적국의 사람이며 그의 아버지는 조선 총독부의 막후 실세다. 그는 이회영을 만나면서 호기심과 의문을 갖게 되며 갈등하고, 이해하고, 흠모하게 된다.
챔니스 주택은 준페이의 상하이 집으로 등장했다. 이회영이 그린 수묵화와 일본 전통 인형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신창석 감독은 말했다. “드라마 촬영지 선정을 위해 곳곳을 찾았지만 동산의료원의 박물관 전경과 잔디밭, 그리고 드라마 주제에 어울리는 3·1운동길 등 독립투사 이야기를 다루는 촬영지로 매우 훌륭했다.”
◇드라마 ‘각시탈’ 기무라 슌지의 집(2012)
드라마 ‘각시탈’은 일제강점기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 이야기다. 조선의 쾌걸 조로와 같은 각시탈의 활약이 주 내용이지만, 주인공 이강토(주원)와 기무라 슌지(박기웅)의 우정과 숙명적인 대립이 중요한 테마로 흐른다. 강토의 아버지는 구한말의 충신이었다. 몰락한 집안과 아픈 형을 위해 강토는 순사가 되었다. “형만 고칠 수 있다면…. 까짓, 앞잡이 소리 들으면 어때….”
슌지는 사무라이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조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둘의 우정은 깊었으나, 결국 강토는 각시탈이 되고 슌지는 극악한 순사가 된다.
챔니스 주택은 소학교 교사시절 착하고 순한 슌지(박기웅)의 집으로 등장했다. 강토와 함께 검도 시합을 하며 뒹굴던 곳이고, 다친 목단을 숨겨 준 곳이기도 하다. 강토와 슌지가 나비처럼 뛰어넘던 초록의 나무 담장은 촬영 후 철거했다. 이외에도 ‘각시탈’에는 대명동 계대와 경북대 의과대학, 대구가톨릭대학 등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박중훈과 천정명이 출연한 영화 ‘강적’에도 의료선교박물관 일대가 등장한다. 쫓고 쫓기는 스펙터클하고 거친 영상 속에서 동산의 아름다운 정원은 그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조민호 감독은 “무척 아름답고 고풍스러워서 영화계가 눈독을 들일 만큼 멋진 장소였다”고 평했다.
◆ 동산의료원-영화 ‘6월의 일기’(2005)
의료선교 박물관의 서양식 정원을 관통해 동산 간호대학의 잔디정원을 지나면 동산병원이다. 병원의 전신은 1899년의 제중원. 처음엔 초가였다. 그러다 붉은 벽돌을 3층으로 쌓아 지은 것이 1931년으로 지금도 당당히 서 있는 동산병원 구관이다. 구관의 입구 정면에는 궁형 아치 모양의 포치가 있었는데, 지금은 잘려져 선교사 주택 뒷마당으로 옮겨져 있다.
신은경과 에릭이 주연한 영화 ‘6월의 일기’에서는 동산병원 구관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동산병원 의과대, 병원 검사실, 간호대, 장례식장, 잔디 정원 등 병원 곳곳이 등장한다. 임경수 감독은 “영화 촬영을 위해 전국을 돌며 답사한 끝에 동산병원을 최적지로 선정했다. 실내조명과 건물, 잔디밭 등이 이번 영화 촬영지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 계성고등학교-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 ‘용의자 X’ 외
동산병원 앞길을 건너면 계성고등학교다. 학교 안에는 1908년에 지어진 아담스관, 1913년의 맥퍼슨관, 1931년의 핸더슨관이 아직도 건재하다. 계성고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다. 드라마 ‘더 킹 투 하츠’에서 아담스관은 이재하(이승기)가 다닌 왕립 초등학교가 되었고, 영화 ‘용의자 X’에서는 천재 수학자 석고(류승범)가 근무하는 학교였다.
엄격한 규율의 미션스쿨에 섹시한 여교생 엄지영(김사랑)이 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다룬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도 계성학교가 배경이다. 김유성 감독은 “영화의 60% 이상이 학교가 배경이라 고민했는데, 계성학교는 100년이 넘는 전통과 설정 자체가 엄숙한 미션스쿨이라 맞아 떨어졌다. 주요 배경이 대구로 설정되면서 부수 인물들의 집이나 거리 촬영이 용이하게 대구로 집중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계성고 외에도 대건고, 계명대, 내서초등, 경운중, 내당동 광장공원 놀이터, 동성로, 성서공단 등 거의 전체가 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15년 개봉 예정작인 이해영 감독의 미스터리 영화 ‘소녀’(가제)도 올해 계성고에서 촬영했다. 영화에서 계성학교는 1938년 경성의 요양기숙학교로 분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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