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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확인

할머니 저 화원이예요
Year : 2016년   입상 : 가작
Name : 관리자   Date: 2016-11-14   |   Hits : 1846
할머니, 안녕하셨어요? 저 화원이예요.
저녁은 드셨어요? 저희도 방금 저녁 먹었어요. 할아버지 잘 계시죠?
언니는 지금 기숙사 들어갈 짐 챙기고 있어요.
네, 할머니. 저도 사랑해요. 안녕히 계세요.
수화기 저 너머에서 어머님이 ‘우리 화원이 안 아프고 학교 잘 다니나, 저녁은 먹었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잘 있으니 걱정마라. 사랑 한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들려온다.
화원이가 친가에 전화를 하고 나서 외가에 전화를 한다. 외할아버지는 집 전화를 잘 안 받으신다. 그러면 화원이가 ‘엄마, 할아버지 또 마을회관 가셨나 봐요. 휴대폰으로 해 볼게요’한다. 큰소리로 말씀하시는 외할아버지랑 통화할 때는 전화기를 귀에서 조금 멀리해 들면서 저도 덩달아 큰소리로 안부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미소를 보낸다.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 화원이가 익숙하게 친가 외가에 안부전화를 마치고 다시 제 할 일을 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 집 일요일 저녁 7시 즈음의 풍경이다. 세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일요일 저녁 할아버지 댁에 안부 인사를 하는 것은 우리 가족이 정한 규칙이다. 규칙이라 쓰고 명령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남편이 조금 강압적이고 일방적으로 시작한 ‘안부 전화 드리기’는 처음에 반발이 상당했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귀찮고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고 아빠의 명령에 의한 행동이라 자발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남편이 일요일 저녁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빼먹는 것이 당연하고 나는 슬그머니 모른 척 눈감았다. 외출에서 돌아 온 남편이 잊지 않고 전화했냐고 물으면 우리 모녀는 쉽게 공모하여 그 순간을 넘기기도 했다. 남편과 아이들 사이를 줄타기하는 내 형편은 그다지 자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에게는 점점 더 안부 전화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이 되어갔다. 야단맞아 가면서 전화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점점 나쁜 기억으로 쌓이는 것 같아 우리는 방법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이나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고 좋아하는 오락프로그램 채널 선택권도 통 크게 양보한다. 물론 채널 선택권 양보에 있어서 남편이 약간 반발하기도 하지만 나는 안부 전화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약간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물론 나로 말하자면 오락프로는 보면 즐겁지만 안 봐도 그만이니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다. 아이들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전화를 하라고 일러 준다. 세상에나! 기분이 좋으면 전화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안부 전화를 마치고 나면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화 드리는 것을 보니 너무나 흐뭇하고 감사하고 기쁘다’라며 최고의 칭찬을 한다. 그러면 극강 사춘기 청소년 녀석들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막내에게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기까지에 이르렀다. 덕분에 우리 세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상을 함께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다.
작년에 우리 집에서 부화시킨 병아리를 한 달 키우다 아파트에서 더 이상 기를 수 없어 시댁에 데리고 갔다. 막내는 자신이 부화시킨 병아리를 할아버지 할머니께 잘 키워달라고 안부전화 할 때 마다 부탁드리고 또 고모부들이 와도 잡아먹으면 안 된다고 다짐을 받기도 한다. 그 닭들이 알을 낳기 시작했다고 할아버지가 전화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몇 일째 모이도 잘 먹지 않고 알을 낳지 않는다고 손녀에게 걱정 섞인 보고를 하시기도 한다. 그러면 막내는 닭의 한살이에 대해 알아보고 털갈이 할 때는 알을 낳지 않는다고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린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때로는 음악처럼 들릴 때가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안부 전화 드리기’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잘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잘한다니까 뭔가 굉장한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은 지극히 당연한 것을 하는데 요즘은 잘한다고 여기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아이 셋을 학교에 보내며 학교에서 하는 학부모교육을 꾸준히 받으러 다녔다. 초등학교는 오전에, 중학교는 오후에, 고등학교는 저녁 7시에 교육을 하니 어떤 날에는 하루에 두 번 갈 때도 있었다. 공식적으로 차려입고 외출할 수 있어 좋고, 같은 반 엄마들과 만나는 것도 즐거움이고, 내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강의를 듣는 것이 그 중 제일 큰 즐거움이었다. 어느 날 학부모교육 강사가 ‘퇴근하는 아버지를 제일 반기는 건 그 집 강아지뿐이다. 요즘 아이들은 택배아저씨를 더 반가워한다.’고 하자 모두들 까르르 웃었다. 그런데 나는 웃지 않았다. 우리 집 얘기인 것 같아 웃을 수가 없었다. 아프게도 우리 집은 강아지도 없어 그나마 반겨줄 누군가도 없는 것이다. 남편이 퇴근할 때 나는 저녁 준비한다고 부엌에서 오는가보다 여기고 내 할 일을 하고 세 아이들도 거의 제 방에서 이어폰을 꽂고 뭔가를 하고 있어 반가이 맞아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데면데면한 극강 사춘기 녀석들과 남편을 연결해 줄 필요가 있었는데 이것부터 시작해보자 싶었다. 인터폰에 아빠 차가 아파트에 들어 왔다는 신호가 뜨면 집에 있는 아이들을 모두 현관으로 불러 모아 도열(?)시킨 다음 아빠를 맞이하게 하였다. 내가 먼저 ‘여보, 오늘 고생 많았어요.’하고, 아이들도 ‘아빠, 다녀오셨어요.’합창을 한다. 남편은 덧니를 드러내면서 웃어 보인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나 싶다. 아빠를 존중하라고만 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일상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실천해보고자 한다.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귀가를 환영해주는 인사를 하니 남편은 뭔가 큰일을 하고 온 사람인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인사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많이많이 하자고 아이들과 약속했다. 가족끼리는 서로 말 안 해도 알지 뭘 말로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말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누군가 도어록을 열고 현관에 들어오면 일제히 큰소리로 환영인사를 한다. 아마 도둑이 우리 집 현관문에 입성해도 큰소리로 환영인사를 해 지레 놀라 도둑이 도망가게 될 것이다. 귀가 환영인사와 잠자리에 들 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우리는 꼭 말로 서로의 안녕을 묻는다. 어색한 건 잠시이고 습관이 되면 매우 자연스러워진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당연한 가족 간의 안녕인사를 잘하는 아이들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밖에 나가서도 친구의 안녕을 물어주는 아이로 자라고 있기를 바란다.
얼마 전 감정코칭의 대가 조벽 교수가 진행하는 부모교육에 참가했다. 강당을 꽉 메운 부모들은 하나같이 내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고 귀를 쫑긋 세웠고 나도 그 중 1인이었다. 조벽 교수가 1등 인재를 위한 부모의 선택이라는 제목 아래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이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라는 것이고, 아빠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큰일은 엄마를 많이 사랑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화면이 뜨자 박수가 쏟아졌다. 부모교육 온 사람이 대부분 엄마들이니 엄마를 많이 사랑해주라는 빨간색 강조 문구에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 PPT화면을 얼른 찍어 남편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이것 좀 봐라. 나를 많이 사랑해주는 것 꼭 명심해.’라고...
이 때 까지 들어온 비법 중 최고의 비법이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 아까운 비법이라 여러 지인들에게 알려주니 모두들 공감하며 맞장구를 친다. 아울러
엄마라는 특정단어에 가둬두지 않고 아빠도 많이 사랑해주는 마음을 크게 먹어 보자고도 했다. 이 기회에 아빠사랑 범국민운동가로 나설까도 생각했다. 누군가 강의 목표 달성도를 측정한다면 나는 200%이상은 될 것이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닫는 프로 수강자라고 자부해본다.
‘아이를 몸으로 가르치면 따라 오고 말로 가르치면 따지려 든다.’고 한다. 이제까지 말로만 가르치려했던 습관을 버리고 몸으로 가르치려는 노력을 해보아야겠다.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 행복감과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집에 맛있는 냄새가 풍기면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면서 말한다. ‘오늘 메뉴는 닭볶음탕이네’, ‘어찌 알았지?’, ‘내 코가 개코잖아. 하하 호호’엄마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밥을 먹고 자란 아이는 바르고 온순하게 성장한다고 믿는다. 지나간 여름에 너무 더워 주위 음식점에 외주(?)를 많이 주긴 했지만 우리 집은 가을이 되어 그 기능을 간신히 회복했다. 맏이가 입맛 없을 때는 갈치조림, 둘째가 모의고사 친 날에는 등갈비 찜을, 막내가 기운 없을 때는 전복죽 등 자신을 격려하기 위한 음식임을 알도록 해주며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있다. 좋은 냄새와 온기를 품은 집을 만들어 가는 엄마로 살아가려 한다.
조부모와 소통하고 아빠의 퇴근을 반가이 맞이하고 함께 밥을 먹는 당연한 일상이 어려워진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복잡해진 시대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아이들이 몸으로 먼저 따르도록 나부터 시작하고 볼 일이다. 일요일 저녁마다 ‘할머니 저 화원이예요.’가 우리 집에 오래오래 들리도록 나는 딸을 자랑스러워하고 폭포수처럼 칭찬하는 엄마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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